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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

버킷리스트 -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27.

'나우이즈굿(Now is good)'이라는 영화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살게된 소녀가 '죽기 전에 해야할 일'을 적어두는데 그러한 것을 '버킷리스트'라고 부릅니다.

버킷리스트라는말은 'Kick the bucket'이라는 중세 교수형 관습에서 유래된 속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해야할 일의 목록'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합니다.

(검색을 해보니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도 이 말이 나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버킷리스트 작성하는 것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


어린 시절 저는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모르고 살았지만, '20대가 되면 꼭 하고 싶은 일' 정도의 리스트를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꼭 원하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이룬 것들도 꽤 많고, 이루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 '이걸 꼭 했어야만 했나?'라고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고, '해보니 썩 나쁘지 않더라.' 생각드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 시점에 저의 지난 버킷리스트를 점검해보고,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위한 버킷리스트'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 결혼하기

: 아마 태어난 이후 가장 먼저 정한 버킷리스트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과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이것을 버킷리스트로 정했을 때 저는 세상에 나온지 약 40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옆집에 살고 있던 아이와 단순히 '사이가 좋고 떨어지기 싫어 함께 살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고

어른들에게 '법으로 정해진 결혼 가능한 최소 나이가 만 18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 15년 남았구나!'라며

그 나이가 되면 꼭 옆집 아이와 결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지금도 결혼 상대를 찾는 기준은 위와 비슷합니다. -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

물론 세월은 그 아이를 다른 동네로 이사 보냈고, 해외로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거니와 당시 저는 국제전화나 국제우편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이었기에 자연스레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



* 피아니스트 되기

: 어릴 때 피아노 치라고 하면 도망만 다니던 제가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피아노에 소질이 보이는 누구나 꿈꾸는 직업인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꿈꾸었습니다.

한 때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을 하고 충분히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로 나아갈 수 있는 '지원'과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저는 그 길을 약간의 고민만 하고 거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똑 부러지는 이유는 없었지만, 어린 저의 시각에서 그 길은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느낌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어린 나이에 제가 보아온 세계는 좁았으니까요 ^^)

물론 '가정형편을 고려한 집안의 반대'도 한 몫 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적극적인 지지하에서도 이미 어려운 길이기에 이런 조건은 매우 큰 핸디캡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세월이 지나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면서 '피아니스트'라는 말의 문턱이 조금은 낮아져

제 스스로 저를 '피아니스트'라 칭하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

(소수의 감사한 분들만이 인정해주시지만, 그래도 점차 그런 분들이 한 분 한 분 늘어갈 때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테크닉이 부족하여 "아, 사실 저는 작곡가입니다."라며 발을 살짝 빼고 싶지만

스스로 비겁해보이기도 하고, 화려한 테크닉만이 피아니스트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보기에(!)

> 앞으로는 제가 생각하는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보고 싶습니다.



* 20대를 방황으로 가득채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정도로 실패하기

: 제 안에 자리잡고 있던 '똘기'라는 녀석 덕에 생긴 리스트입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난 자신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요? ^^

기를 쓰고 살아도 될까말까한 세상에 일부러 실패하려고 하다니 돌아보면 한심하고 제 복에 겨웠나보다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생 때까지 반듯한 모범생이던 아이가 갑자기 이상해져 이것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고충이 컸습니다만,

(가족들에게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 덕분에 경험도 많이 쌓아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고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으며, 복잡하게 느껴지던 인간관계도 홀가분하게 리셋되기도 하고

어려울 때마다 함께 해준 참된 친구들도 발견하게 되었으니 매우 뜻깊다 하겠습니다. ^^



* 장발족 되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먼저 실천에 옮긴 일 중 하나가 '장발족 되기'였습니다.

(보통 학창시절에는 머리를 마음 껏 기를 수 없다보니 반대급부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두발규제는 학생으로 하여금 교사에 대한 반발심을 유발하기에, 또 그 밖에 여러가지 이유로 두발자유화를 지지합니다.)

머리카락을 기르고 길렀더니 어느 순간 어깨 밑에 까지 내려왔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아는 동창은 '정대만 스타일'이었다고 하는데 글세요- ㅋ

긴 머리는 2001년 쌈지락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기 전 싹둑 잘랐습니다. ^^

(함께 무대에 오른 다른 분들 모두 머리가 짧아 저도 잘랐는데, 왜 잘랐냐 하시더라구요- ㅎ)



*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무대에 서서 연주하기

이것은 앞에 조금 언급했던 '2001년 쌈지락 페스티벌'에 레이지본의 키보드 세션으로 참가하면서 참 '싱겁게'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이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게 됩니다. 서울 시청 앞에서-

이것은 마치 본인의 노력은 코딱지 만큼도 들이지 않고 이룬 행운 같은 것이어서, 

(여러 분들에게 죄송스럽지만)  '싱겁다'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저에겐 이런 '싱거운' 열매였기에 후에 미련없이 밴드 활동에서 손을 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일궈낸 것이 아니면, '내 것'이라고 부르기에 망설여집니다. ^^



- 다음 편 예고 -

* 살빼서 마른 체형되기

* 내 밴드 만들기

* 전설의 앨범 한 장 내고 사라지기

* 명문대 졸업해서 딴따라짓 하기

* 내 손으로 일렉기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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