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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

어머니와 명동데이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2.
어머니와 명동에서 데이트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졸업한지 40년도 훨씬 지나 방문한 모교 앞에서 환한 미소로 포즈를 취하셨지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가 한 명의 소녀가 되신 듯 하였습니다. ^^

변화가 잦은 명동인지라 아쉽게도 어머니의 고향집(?)은 사라지고 공사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로 부터 듣는 옛 서울 이야기는 알콩달콩 참 재미있었습니다.

당시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명동역 2번 출구 앞 파리바게트는 즐겨찾으시던 동네 만화방이었다고 합니다. (ㅋㅋ)

현재 퍼시픽 호텔 건물은 대방동으로 이사가기 전 병무청이 쓰고 있었고,
아름답고 넓은 정원을 자랑하던 친구분의 집은 주민센터가 되어 있습니다.

현재 관광객들이 묶는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호텔은 피부비뇨기과였고,
대중목욕탕은 일식집이 되었습니다.
(그 집엔 미안하지만, 건물 외벽 검은 타일에서 괜시리 사람 때 묵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앞으로 그 집에서 식사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신성일과 엄앵란이 살던 집이 멀지 않은 골목에 있었으며,
미군을 고객으로 모시던 동네의 양공주님이 살던 곳에는 여관이 들어섰습니다.

명동 메인 스트리트와 그 건너편이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넘나들 수 있었고
메인 스트리트 한복판에서는 (현재는 찾아보기 힘든) 태극당 빵집이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립극장이 명동에 있었다는 사실!
현재 명동예술극장은 장충동으로 이사가기 전 국립극장 건물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공연장으로 명성을 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명동의 영양센터는 간판에 적힌 문구대로 5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새로 안 사실이라면, 본점은 중앙우체국 뒤쪽 작은 건물이라고 하네요. ^^

외할머니는 충무로 영화계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영화계의 뒷이야기도 살짝 듣게 되었습니다.
제작비를 끌어가서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니
한국 영화 발전에 커다란 공을 세우신 것이 아닐까 생각듭니다. ^^;

외할머니가 장사하시던 골목을 지났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남아있는 곳입니다.
그 골목이 그 곳인 줄 모르고 수도 없이 많이 지나다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정확한 곳을 짚어주시니 "아!"하며 이마를 탁 치게 됩니다.
외할머니가 그 곳에 앉아 웃으며 반겨주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어머니랑 함께 산책할 때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데,
실제로 그 곳을 찾아가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생생하고 와닿는 서울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느낌을 음악으로도 남긴다면 좋겠군요. ^^

언제가 음악을 통해 서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지긋지긋하지만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애증이 서려있는 곳
어머니의 고향, 그리고 저의 고향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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