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빛 머리 소녀(La fille aux cheveux de lin)는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1862.8.22~1918.3.25)
전주곡집 1권에 수록된 8번째 곡으로, 1910년 즈음 작곡되었습니다.
짧은 소품에 불과합니다만, 저에게는 음악적인 계기를 준 곡입니다.


저희 집에는 카세트 테이프 두 개로 이뤄진 '피아노 소품집'이 있었습니다.
주로 '세광 피아노 명곡집'에 있는 곡들, 예를 들면
바다르체프스카(Tekla Bądarzewska-Baranowska)의
'소녀의 기도(Modlitwa dziewicy)'와 같은 유명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1992년 가을,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피아노 소품집'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멍때리며' 무심결에 음악을 듣던 저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느낌에 당황했습니다.
음악이 '파고들었다'고 표현하는데, 아직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음악이 바람과 같은 기체 형태로 파고들어와
심장의 가장 깊고 예민한 부분만 살짝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라 해야할지!
여느 다른 곡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만은 명확했습니다.

음악을 글로 표현하다니 그림을 말로 그리는 것 만큼이나 부질없군요 ㅋ

아무튼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묘한 기분과 함께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요.
제목을 확인해보니 *'갈색 머리의 소녀'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드뷔시의 곡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드뷔시? 처음 보는데 누구지?"라며ㅋ

*지금은 보통 '아마빛 머리 소녀'로 되어있는데,
당시에는 '갈색 머리의 소녀'로 되어있었습니다.
제목 La fille aux cheveux de lin 중 
de lin부분이 린넨을 뜻하는데
아마로 만든 린넨이 주로 황갈색을 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갈색 머리의 소녀로 번역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로 뽑은 실
위키백과 flax에 pale yellowish-gray color라는 표현이 있네요!

진지하게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그때였을 겁니다.
이런 음악을 연주하고 또 들려줄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름 방학에 피아노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자신감이 붙었던 저는
곡을 연주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악보를 찾아 서점을 뒤졌는데,
당시 이 곡을 접한 충격 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사실
어렵게 구한 이 곡의 악보가 달랑 두 페이지였다는 것입니다.

음악 감상은 분명히 소리를 귀로 듣는 것입니다만,
시간이 갈 수록 귀로만 듣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소리가 전달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생기는 정념, 그로인해 생기는 크고 작은 삶의 변화들을
뇌파의 변화나 호르몬 분비로 건조하게 표현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 짧은 곡을 듣고서 저에게 일어난 일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많은 일들
음악이 아니었다면 달라졌을 법한 삶의 모습들
어떤 방식으로든 음악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며
꾸준히 삶의 중심에 음악이 두는 것

UND 발매 쇼케이스 

사진 ©이지안


저는 늘 비어있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특별히 외로움을 모르고 자랐는데,
아마 피아노와 음악 덕분이었을 겁니다.

음악에, 피아노에 
그리고 앞선 모든 음악가,
특히 드뷔시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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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ianist moon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