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딜쿠샤' 관람 후기
뮤지컬 '딜쿠샤' 관람
지난 12월 10일, 뮤지컬 '딜쿠샤'를 관람하였습니다. 마침 딜쿠샤와 함께한 피아니스트 문용의 여섯 번째 '연결공간' 온택트 뮤지엄 콘서트를 최초 공개한지 1주년입니다. '연결공간' 기획제작자로서 뮤지컬 제작 소식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었는데, '연결공간' 제작에 함께하는 타라 님이 뮤지컬 예매해 주신 덕분에 함께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열려
그날은 마침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날이었는데, 메리와 앨버트의 손녀이며 브루스의 딸인 제니퍼 테일러가 깜짝 출연하여 테일러 가문의 후손을 실물로 영접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연결공간' 제작과 관련하여 메리 테일러의 '호박 목걸이'를 읽고 딜쿠샤는 물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모원까지 직접 방문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만남은 저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 어린 정동길
공연은 딜쿠샤와 그리 멀지 않은 국립정동극장에서 상연하고 있습니다. 딜쿠샤에서 도보 20분 정도 거리입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이 어린 정동제일교회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어서 반갑습니다. 배재중고교 출신으로서 졸업 예배만은 정동제일교회에서 드렸는데, 저는 학교 대표 피아노 반주자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 거의 매년 이곳을 방문해 전교생의 찬송가 반주, 합창단 또는 중창단의 반주를 하였습니다.
이유 있다! 딜쿠샤에 관한 내적 친밀감
비슷한 맥락으로 딜쿠샤에 관한 내적 친밀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테일러 가문과 언더우드 가문의 친분, 그리고 선교사로서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와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가 한 배를 타고 조선에 건너왔다는 사실에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대한제국 당시의 외국인 커뮤니티는 무척 좁았을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무의식적으로 접한 근현대사의 분위기는 지금도 빨간 벽돌 건물에서 느끼는 특별한 정서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딜쿠샤와 함께한 여섯 번째 '연결공간'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금자 할머니와 브루스 테일러의 해외 펜팔
공연은 딜쿠샤에서 평생을 살아온 금자 할머니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찾는 브루스 테일러가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라떼는 해외 펜팔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딜쿠샤와 함께한 금자 할머니의 시선으로 딜쿠샤에 얽힌 역사는 물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를 함께 담아낸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희망의 궁전, 딜쿠샤'를 원작으로 하지만, 메리 테일러의 저서 '호박 목걸이'에 담긴 내용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다큐멘터리 '희망의 궁전, 딜쿠샤: https://youtu.be/hPsXMxr2LY8?si=Zq1bcSEvYj1glefx ]
관객과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지만, 원래 은행나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려고 했다가 편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연결공간' 제작 당시, 딜쿠샤 옆 은행나무 시점 또는 딜쿠샤 건물의 시점으로 대본을 구성하려다가 포기했던 저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결국 우리도 타라 님 의견으로 '딜쿠샤에 보내는 편지' 컨셉을 가미한 게 떠올랐고, 이것은 결국 뮤지컬이든 우리든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연결공간' 제작으로 인하여 딜쿠샤에 관한 꽤 많은 디테일을 숙지하고 있다는 건, 공연 관람에 도움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방해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2시간 가량의 공연에 담아내는 제작의 어려움을 알지만, 알고 있는 것에 미치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어 아쉬운 점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딜쿠샤가 근현대 건축물로서 가치가 있는 건 그 독특한 건축 양식때문인데, 설치된 무대는 딜쿠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밖에 호박 목걸이에 얽힌 이야기나 등장 인물 중 김 주사의 비중이 낮고 대다수의 내용을 흘러가는 대사로 처리한 부분 또한 아쉬웠습니다. 후방 스크린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호박 목걸이' 드라마 제작 계획 밝혀
그렇지만 이러한 부분은 제니퍼 테일러가 할머니의 저서를 원작으로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호박 목걸이' 드라마를 통해 자세하게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앨버트는 김치를 즐길 줄 아는 대한외국인이었다는 것.
'호박 목걸이'에 한국인들의 감탄사인 '아이고'에 관한 일화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살려낸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매우 센스 있는 접근이었다고 봅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공연을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것입니다. 최고의 문화예술 후원 방법은 문화예술 소비입니다.
[ 뮤지컬 '딜쿠샤' 예매: https://mobileticket.interpark.com/goods/23015577 ]
[ 메리 테일러 '호박 목걸이' 구매: http://aladin.kr/p/GGuBp ]
터지지 마, 눈물샘!
많이 아는 죄로 인하여 다소 신경 쓰이는 디테일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알고 있던 내용이 눈앞에 펼쳐지며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한과 울분, 힘겨운 서민의 삶이 그대로 전해지는 바람에 눈물샘이 터지지 않게 힘써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파의 느낌이 들지 않으며 꽤 세련되게 풀어내었다고 봅니다. 아리랑 멜로디를 잘 활용한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 문용 - 글루미 아리랑: https://youtu.be/_pFUw1EBCpY?si=dNk8kPZ-IDMmd0QN ]
마음의 고향으로서의 딜쿠샤
공연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는 앨버트 역의 한상호 배우의 진행으로 양준모 예술감독, 이종석 연출, 브루스 역의 최인형 배우, 금자 역의 김현숙 배우, 메리 역의 임강희 배우, 강철/김주사 역의 조영태 배우가 함께하였습니다. 테일러 가의 후손 제니퍼 테일러도 자리해 주셨고요.
이종석 님의 우리말 '집'에는 House와 Home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며 Home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취지의 말씀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또한 앨버트가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며 돌아오고자 했던 '집'으로서 딜쿠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섯 번째 '연결공간'의 '집'이라는 글자에서 변화하는 타이틀 모션과 'Home, Sweet Home' 연주로 이어지는 부분을 떠올렸습니다.
[ 문용 - Home, Sweet Home: https://youtu.be/hOwTuy17Q8Y?si=Ych89n9ZX7iWSx81 ]
딜쿠샤라는 '연결공간'
딜쿠샤라는 '연결공간'에 얽힌 이야기와 그것이 주는 따뜻하고 특별한 정서는 많은 공감을 얻을 듯합니다. 아득히 먼 듯하지만 따져 보면 그리 멀기만 한 것은 아닌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그동안 우리 사회가 흘러온 궤적을 뮤지컬 관람으로 단 2시간 만에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뮤지컬 '딜쿠샤'를 추천합니다.
물론 딜쿠샤와 함께한 피아니스트 문용의 여섯 번째 '연결공간' 온택트 뮤지엄 콘서트도 마찬가지고요!
대한제국 시기 이 땅에 건너와 우리 민족과 함께 일제강점기를 함께한 대한외국인 앨버트와 메리, 브루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희망합니다.
[ 피아니스트 문용의 여섯 번째 '연결공간' 온택트 뮤지엄 콘서트: https://youtu.be/EBwRnGtF9c4?si=MXrvQdrpImco1_4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