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우리말이 영어만큼 힘을 갖는다면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듯하다. 90년대 초반이었으니, 언론에선 워싱턴포스트의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다’는 말을 인용하며 80년대 고도 성장 이후 한국의 과소비 풍조를 문제 삼았다. 공익광고에서는 번화가에서 우리말 간판이 보기 드물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적 불명 외래어 남발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던 때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61939
사회 시간에 이러한 이슈를 다루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손을 들고 발표한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대한민국의 국력을 더욱 키워 한글과 우리말이 영어 만큼 힘을 갖게 하면 됩니다.”
당시 (아마 지금도 그렇겠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지라 그 분위기를 못 이겨 발표했지만, 내가 만약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아마 마음이 웅장해졌을 듯하다. 그때 선생님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신 듯하지만.
30년이 흘렀다. 그때 내가 뱉은 말이 얼마나 나비 효과를 일으켰을지는 모르나, 거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때의 어린 아이는 현재의 상황을 살아 생전에 볼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언젠가는’이 붙은 말이었을 뿐이다. 우리 말이 들어간 대중 음악이 영미권 팝처럼 인기를 끌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었을 뿐, 현실화 되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오늘 한글날 노래 가사를 가만히 살펴 보니 저런 기특한(?) 생각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 2절 중]
누구나 쉬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로다
[ 3절 중 ]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 공통 후렴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한글이 ‘세계의 글자 중 으뜸’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가사는 한글은 강력한 ‘생활의 무기’라서 ‘한글(을 쓰는) 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 한글 보급에 힘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1-3절 공통 후렴으로 반복함으로써 힘 있는 나라가 되려는 의지에 쐐기를 박고 있다.
각종 지표의 악화로 한국 사회 전반에 희망을 잃어가는 듯하나 지난 30년 간 대한민국 아니, 반 만 년 한반도가 겪은 우여곡절의 다이내믹한 역사를 돌아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