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년 눈 건강, 남대문 안경점 방문기
시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에 피로가 쌓이고 작은 글씨는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읽을 때 어려움이 생겼다. 목은 점차 모니터를 향해 뻗어나가려 하고 스마트폰을 잡으면 목이 부러질 듯 구부리는 듯하다. 늘어난 서류 작업은 먹고 살려는 발버둥이라 부득이하게 하더라도 독서는 차츰 멀리 하게 된 듯하다.
매번 신년 다짐으로 건강을 0순위에 두지만 어느새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미봉책으로 눈에 좋다는 영양제도 그때그때 복용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눈의 피로가 쉽게 가시질 않았다.
신년을 맞아 환경을 하나씩 정비하고 점검해 본다.
너무 어둡다. 조명이 지나치게 밝아 눈이 부신 걸 싫어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집이며 작업실 조도가 낮은 편이다.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만든 환경인데, 이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맥 위에 설치한 조명은 보조 배터리로 작동시키고 있었는데, 그 보조 배터리를 카메라용으로 쓰다보니 어느새 조명 없이 아이맥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근마켓에서 보조 배터리를 구매해 아이맥 위의 조명에 연결해 켜주었다. 한결 밝은 업무 환경이다.
눈에 잘 맞지 않아 사용하던 안경을 한 쪽으로 치워둔 지 오래다. 청광 차단 기능을 추가할 겸 안경 렌즈만 교체해 보려는 생각으로 남대문 안경집을 찾아가 보았다. 몇몇 집을 검색해 봤는데 한 집이 루테인 드링크를 내어 주는 모양이다. 만두집 옆에 자리잡은, 두 개의 층으로 이뤄진 안경집이다. 줄 서는 만두집 옆집이라 영업에 꽤 방해를 받겠구나 싶어 보니 안경집 앞으로 줄 서지 말라는 배너가 세워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요새 같은 때에 꽤 붐빈다. 행색으로 보아 견적이 안 나오겠다 싶었는지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들은 본채만채하고 젊은 막내 점원이 맞이한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경력이 얕은 안경사에게 안경을 맡겼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사실 연배 있는 안경사에게 상담 받길 원했는데 그들이 본채만채하니 어쩔 수 없다.
점원에게 방문 목적을 밝히니 2층으로 안내한다. 그 곳은 정교한 시력 측정을 위한 전문 장비들이 놓인 곳이다. 옛날 사람이라 시력 검사판을 찾아 두리번 거렸는데, 요새는 어플을 이용해 난수 발생에 의한 숫자를 화면에 띄우는 모양이다. 라떼는 미리 시력 검사판을 스캔하고 외울 수 있어서 엉터리 결과를 받는 녀석들도 꽤 있었는데, 애초에 그러한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이 별다른 건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변화는 검사의 신뢰성을 충분히 높인다.
아무튼 검사를 마치고 렌즈 교체 비용 수준을 물으니 예산에 훨씬 못미치는 값이다. 앗싸게먹힌다고 좋아하며 내려오니 진열된 안경테가 눈에 들어 온다. 맘에 드는 게 있겠냐며 일단 스캔이나 해보자는 맘에 눈을 굴려 본다.
동행한 이의 추천으로 몇몇 안경테를 꺼내 착용해 본다. 원래 안경테도 가볍고 좋았지만 요새 안경테는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볍고 신축성 있으며 튼튼하다. 견물생심이라고 옛말이 틀리지 않는지 맘이 슬슬 바뀐다.
가격표가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 기분이다! 아직 어설픈 친절함이지만 젊은 안경사가 손님의 취향을 읽고 진열장에 없는 안경테를 꺼내오는 정성까지 보이며 이 까다로운 손님을 잘 응대해 주기에 결정했다.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사회초년생들을 보면 그 시기의 내가 떠올라 어쩐지 마음이 짠하다. 몇 마디 나눠보니 본인도 안경을 오래 착용해 온 안경 박사인 듯하다. 올바른 안경 착용법과 보관법도 상세히 알려 준다.
잠시 앉아 기다리니 금새 안경이 나온다. 청광으로 종이를 비추다가 그 사이에 안경 렌즈가 자리잡으니 종이 위의 파란 빛이 사라진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청광 스위치를 조작한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놀랍다.
조심스레 안경을 건네받아 착용해 본다. 아닛, 심봉사가 눈을 뜰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점원이 알려 준 방법대로 쓰니 과연 눈 앞이 훤하다. 아까의 정밀 측정 데이터가 내 눈 앞에 그대로 이식된 듯하다. 광대승천 - 이래서 안경은 남대문이라고 하는 구나! 젊은 안경사라고 미쁘지 않게 보았던 게 내심 부끄럽다.
역병 탓인지 루테인 드링크는 내어주지 않는다. 대신 김서림 방지용 안경 닦이를 서비스로 내어준다. 심지어 다회용이라니 개화기적 사람은 신문물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서비스를 내어 주는 걸 보니 어째 아까의 가격표가 맘에 걸린다. 이렇게 호구 잡히는 건가 싶어 가격을 물어 본다. 점원은 가격표 따위 종잇장에 불과하다는 듯 내 귀를 의심케 하는 가격을 부른다. 첫 방문이라 감사의 뜻으로 잘 해주신단다. 광대승천 - 이래서 안경은 남대문이라고 하는구나!
이제 책도 마음 껏 읽고 일도 열심히 해서 안경 값 뽑아야지.